[경향잡지 이사장님의 기고글] 밤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까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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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까이 오고 있다!
-현대 세계 안에서의 교회-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끝난 후, 교회는 활력을 되찾으며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새로운 교회상을 정착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그중 일반 신자들에게 가장 크게 다가온 변화는 각 나라의 고유한 언어로 미사를 봉헌하게 된 일이었다. 이전에는 잘 이해할 수 없었던 라틴어 미사가 각국의 언어로 바뀌면서, 신자들은 미사에 보다 깊이 참여하게 되었고, 성사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과거 봉건적 제도 속에서 교회를 멀리서만 바라보던 신자들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성직자·수도자·평신도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공동체를 이루게 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이 제시한 이러한 새로운 교회 공동체상에 따라 신자들은 공동체의 주체로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주인의식을 가지고 열정적인 신앙생활을 이어 가게 되었다. 이것은 공의회의 대표적인 열매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열정과 활기가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다양한 신심 운동과 평신도 단체들의 활발한 활동이었다. 그들은 평신도 사도직의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며 교회의 사명을 함께 해 왔다.
-한국 교회의 실제-
한국 천주교회는 평신도들이 책을 통해 스스로 공부하며 세운 교회다. 세계 교회 안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형태로 탄생한 것이다.
100년이 넘는 박해 시대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 수많은 시련을 겪으면서도 신앙의 뿌리를 굳게 지켜 온 한국 천주교회는 1960년대에 들어서며 본격적인 정착기에 접어들었다.
군사독재 시절, 김수환 추기경이라는 시대의 어른을 통해 한국 교회는 정의를 실천하는 공동체의 모습을 세상에 보여 주었다. 많은 이들이 이에 감동 받아 교회 공동체에 입문했고, 이 시기는 한국 교회의 복음화율이 가장 높았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교세가 급격히 확대되면서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문제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새로 입문한 신자들에 대한 지속적인 돌봄이 부족했고, 점차 공동체에 소홀해지거나 교회를 떠나는 신자들이 늘어났다. 이는 한국 교회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한국 교회는 이에 대한 체계적인 대처를 충분히 하지 못했다. 그 결과 많은 신자들이 공동체를 떠나게 되었고, 특히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는 통계적으로도 미사에 참여하는 신자수가 크게 감소하는 변화를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교회는 새로운 신자들을 맞이하고 있으며, 신앙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이는 남아 있는 신자들이 보여주는 진실한 신앙인의 모습 덕분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좀 더 섬세하게 다루어야 할 여지는 있지만, 그들의 삶이 다른 이들에게 신앙의 진정성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 사회는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었다. 교회 공동체 역시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교회는 더 심한 초고령화 양상을 띠고 있다.
65세 이상 신자 비율이 20-39세 신자 비율을 넘어선 것이다.(「2024 한국 천주교회 통계」참조), 교회 봉사자들도 20-50대보다 60대 후반에서 70대 신자가 더 많아 보인다. 1960-70년대에 신앙을 받아들인 청장년 세대가 이제 그 연령층이 되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부흥 운동이 필요한 시대-
그러나 한국 천주교회는 지금도 끊임없이 변화와 쇄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많은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들이 이러한 현실을 우려하며 자구책을 마련하고 기도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금은 '새로운 부흥 운동'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다.
교회가 역사 속에서 위기를 맞이할 때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어떤 개인이나 공동체를 통하여 교회를 새롭게 일으키셨다. 한국 교회뿐 아니라 전 세계 교회가 직면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위기의식이 아니라 새로운 부흥운동, 곧 성령의 역사가 필요하다. 필자는 그 해답을 '복음화'라는 명제에서 찾고자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강조점이자 교회의 고유한 사명인 복음화는 오늘의 교회가 처한 모든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이다. 복음화는 단순히 선교를 의미하지 않는다. 나 자신의 재복음화와 복음적 삶의 실천을 통한 교회의 쇄신, 그리고 세상을 향한 하느님 나라의 선포와 확장, 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용어가 복음화이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존재 이유이자 고유한 사명이다. "교회는 복음화를 위해 존재합니다"(성바오로 6세, 「현대의 복음 선교」, 14항),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프란치스코, 2019년 10월 특별 전교의 달 인터뷰)라는 교황님들의 말씀은 여전히 깊은 울림을 준다.
새로운 부흥운동이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지닌 고유한 가치와 존재 이유를 다시 발견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복잡한 사회 구조 속에서 많은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교회의 존재 이유는 단순하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그분의 말씀을 실천하며, 그 삶을 통해 얻은 기쁨과 평화를 세상에 증거하고 선포함으로써 사람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었습니까? 지금 예수님 때문에 기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인류의 유일한 구원자이심을 확신하고 있습니까?" 이 질문들은 단순해 보이지만, 우리가 복음화를 올바로 이해하고 있는지를 점검하게 한다. 만약 이 질문에 확신을 가지고 답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다시 복음화의 길로 돌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고, 실천하며, 증거하고, 선포하는 신앙의 기초를 새롭게 세워야 한다.
-희망의 문턱에 들어서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희망을 주셨다. 부족하면 구하고, 닫힌 문이 있으면 두드리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대 사회의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품고 그분께 청해야 한다. 이 희망은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확신과 함께하는 신앙의 표현이다.
이 희망이 실현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제언을 드리고자 한다.
첫째, '기도 생활 운동'이다. 기도는 모든 신앙인의 기본이지만, 실제로는 많은 이들이 기도하지 않고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활동만 유지하고 있다. 형식적인 신앙생활에는 열매가 없다. 기도 생활이 우리 삶의 중심에 자리 잡아야 한다.
둘째, '복음적 삶의 실천'이다. 복음적 삶을 실천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지만, 핵심은 분명하다. 우리 이웃의 아픔과 고통, 외로움과 소외를 외면하지 않고, 관심과 배려로 함께 나누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신 사랑의 실천이 바로 이것이다.
셋째, '증거하고 선포하는 삶'이다. 복음적 삶을 실천하는 사람은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기쁨과 행복을 체험한다. 그 체험은 삶을 변화시키고, 그 기쁨을 이웃에게 전하고 싶게 만든다. 그렇게 복음적 삶을 통해 얻은 기쁨과 평화를 증거하고, 그 중심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게 된다.
우리의 희망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로 알고, 믿고, 실천하고, 증거하고, 선포하는 '복음화의 사명'이야 말로 교회의 존재 이유이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다.†
-신앙인의 백년지기 경향잡지 2026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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