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성지순례(4)] 리투아니아 빌뉴스 "하느님 자비의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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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화발전소 성모성지순례(4)
리투아니아
[하느님 자비의 성당]
(Vilnius Church Of the Divine Mercy)
"최초의 자비의 예수님 원본이 있는 곳"
-전 세계에 널리 알린 하느님의 자비의 메세지를 선포하는 성지-
《하느님 자비의 성당》
[리투아니아 빌뉴스 하느님 자비의 성지(25.06.17)]
하느님 자비의 성지는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에 지어진 성삼위일체의 작은 고딕 양식 교회로 시작되었습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이곳은 하느님의 섭리로 기도뿐만 아니라 자비의 행위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250년 이상 유지해온 '성삼위일체 병원'이 이 교회 바로 옆에 있었는데, 노인과 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잘 갖춰진 쉼터로 많은 병동이 있는 것으로 유명했고, 오랫동안 도시에서 가장 큰 빈민 보호기관이었습니다.
이 시설의 토대는 네리스 강(현재의 그린 브리지 부지)을 가로지르는 다리 건설과 관련이 있는에, 1536년 리투아니아 대공이자 폴란드 국왕인 지기스문트 1세가 요나스 호지유스에게 아버지 올리히의 뜻을 이어받아 네리스 강에 다리를 건설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했습니다. 호지유스는 특권을 통해 얻은 자금으로 삼위일체 병원을 유지하다가 성령교회의 도미니코회에 위탁했습니다.
수년 후, 병원은 시 행정관의 관할권으로 넘어갔고, 이후 성삼위일체 교회 사제관에 거주하는 교구장의 관리를 받게 됐습니다. 병원 공동체원들은 성삼위일체 작은 교회에서 기도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돌볼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는 은인들을 위해 기도하는 사명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삼위일체 교회는 18세기에 대학교 소유였습니다. 대학교 교수나 총장 사제들이 교회를 관리했습니다. 1781년부터 1805년까지는 천문학자이자 대학교 총장이었던 마르티나스 포초부타스가 그곳에서 일했는데, 그는 당시 남자 병원 2층에 살았습니다. 병원은 18세기 말까지 운영되었습니다.
1821년에 이 교회는 정교회로 전환되었고, 두 병원의 이전 건물은 더욱 현대적인 병원으로 개조되었습니다. 이 교회는 불과 1세기 후에 가톨릭으로 반환되어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의 관리를 받게 되었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리투아니아 단체들은 이 병원의 옛 건물에서 활동했습니다. 1946년에서 1947년 사이 소련 시대에 성당이 폐쇄되기 전에 미카엘 소포코 신부가 그곳에서 사제로 있었다는 사실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2004년 3월 8일, 빌뉴스 대주교 유오자스 아우드리우스 바치키스 추기경의 교령에 따라 성당은 자비로우신 예수님의 성상을 모든 언어로 모든 민족이 공경할 수 있도록, "하느님 자비의 성당"으로 재탄생 됐습니다.
['하느님 자비의 성당' 앞에 붙어 있는 90주년 기념 현수막(25.06.16)]
이 현수막은 1934년부터 2024년까지 최초의 자비의 예수님 원본이 보존된 성당으로 90주년을 기념한 현수막입니다.
[하느님 자비의 성당 앞에 있는 안내문(25.06.16)]
그 아래 안내문이 있습니다.
번역하니,
빌뉴스 자비의 예수 성당
(Vilnius Church of the Divine Mercy)
「빌뉴스 자비의 예수 성당은 전 세계 순례자들을 끌어들이는 자비의 예수 성화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곳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고 전 세계에 널리 알린 하느님의 자비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성지입니다.
이 성당은 원래 15세기에 성삼위(거룩하신 삼위일체)라는 이름의 고딕 양식 가톨릭 성당으로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그 역사는 순탄치 않았습니다. 19세기에는 한동안 정교회(러시아 정교회) 소속으로 사용되었다가, 1920년에 다시 가톨릭 교회로 반환되었습니다. 소비에트 시기에는 성당이 폐쇄되어 창고와 작업장으로 쓰였습니다. 리투아니아가 독립을 회복한 뒤, 성당은 빌뉴스 대교구에 다시 반환되었습니다.
2004년 복원 공사 후, 이 고딕 양식의 성당은 자비의 예수 성화를 모시고 끊임없이 경배할 수 있는 성소로 꾸며졌습니다. 현재 중앙 제단에 모셔진 이 성화는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를 상징하며, 1934년 빌뉴스에서 성녀 파우스티나 코발스카(1905-1938)의 환시에 따라 화가 에우게니우스 카지미로프스키(1873-1939)가 그린 작품입니다.
소비에트 시대에는 이 성화를 파괴로부터 지키기 위해 리투아니아와 벨라루스의 여러 성당에 은밀히 숨겨져 있었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이 성화와 자비 신심을 전세계에 퍼뜨리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1980년 발표한 회칙〈자비로우신 하느님(Dives in Misericordia)에서 자비 신심의 신학적 기초를 더욱 깊이 다루었고, 1993년에는 성녀 파우스티나를 시복, 2000년에는 시성하였습니다. 같은 해, 교황청 전례성은 부활 2주일(부활 후 첫 주일)을 전 세계 가톨릭 교회에서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지내도록 선포했습니다.
이 성당에서는 매년 자비 주간이 부활 대축일부터 자비 주일까지 이어집니다. 성녀 파우스티나의 고해 사제이자 영적 지도자였던 복자 미카엘 소포코(미하우 소포츠코로도 발음, 1888-1975) 신부도 자비 신심의 중요한 증인이었습니다. 그는 소비에트 당국에 의해 성 미카엘 성당이 폐쇄되기 전까지 빌뉴스에서 사목을 하였으며, 2008년 시복되었습니다.
저희가 도착했을 당시
미사가 막 끝마치는
중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자비의 예수님 원본에 눈이
찰칵!!
[빌뉴스 자비의 성당 내부 제대 위 자비의 예수님 원본(25.06.16)]]
바로 이 성화가 자비의 예수님
최초의 원본입니다!
원본 그림을 직접 보다니!!
정말 경이로운 마음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감동이 밀려옵니다!
이 곳으로 이끌어주신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럼 성화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성화의 역사에 대하여】
「1931년 2월 22일 프워츠크(Plock)에 머무는 동안, 파우스티나(Faustyna)수녀는 자신에게 보여주신 모습대로 성화를 그리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하느님의 종'은 명령을 수행하려고 노력했으나, 그림을 그릴 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단념하지 않고, 계속해서 이 문제로 고심하던 중, 동료 수녀들과 고해 신부들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몇년 후, 장상들은 그녀를 빌르노(Wilno)로 보냈습니다. 그곳에서 담당 고해 신부인 미카엘 소포코(Michal Sopocko)신부가 아직 구체화되지는 않았지만, 파우스티나가 이야기하는 그림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소포코 신부는 화가인 에우게니우스 카지미로프스키(Eugeniusz Kazimierowski)에게 파우스티나 수녀가 묘사하는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1935년 6월,마침내 이 역사적인 성화가 완성되었고, 소포코 신부가 주임으로 있는 빌르노의 성 미카엘(Sw. Michal)성당 곁에 있는 베르나르도 교단의 수녀원(Klaztor Siostr Bermmardynek) 복도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1935년, 세상의 구원을 기념하는 희년 행사를 마감하면서, 하느님 자비의 성화는 오스트라 브라마(Ostra Brama, 빌르노로 들어가는 동쪽 문)로 옮겨졌고, 4월 26일부터 4월 28일까지 먼 곳에서도 볼 수 있도록 높은 창에 전시되었습니다.
1937년 4월 4일 자비의 성화는 로무알티 야으브쥐콥스키(Romualdjalbrzykowski)대주교의 승인을 받아 축성되어, 빌르노의 성 미카엘 성당에 보존되었습니다. 야으브쥐콥스키는 하느님의 자비의 성화가 예술적으로 그려졌으며, 현대 종교 예술에 있어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성화의 원본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우선 배경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고, 그리스도께서 걷는 모습만 보입니다. 예수님의 머리 둘레에는 작은 후광이 빛나고 있으며, 눈은 마치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는 것처럼 약간 아래를 향하고 있습니다. 오른손은 강복을 하시려는 듯 위로 들고 계시고, 왼손은 심장 부분의 옷자락을 들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옷자락이 벌어진 부분으로부터 두 개의 빛줄기가 나오고 있는데,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 쪽에서 보아 오른편의 빛줄기는 연한 흰색을, 왼쪽의 빛줄기는 붉은색을 띠고 있습니다. 이 두줄기의 빛은 그분의 손과 옷을 뚫고 빛을 발하면서 퍼져 나갑니다.
1943년 르부프(Lwow)에서 자비의 성모 수녀회 수녀들의 요청을 받고, 화가 스타니스와프 바톱스키(Stanislow Batowoski)가 다른 성화를 하나 더 그렸습니다. 이 성화는 바르샤바(Warszaea)의 쥐트니아 3/9번지(ul. Zytnia 3/9)에 있는 수녀원 경당의 제대에 모셔졌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바톱스키의 성화는 모든 사람들이 무척 좋아했습니다. 이에 용기를 얻은 자비의 수녀회의 총장 수녀는 바톱스키에게 크라쿠프(Krakow)에 있는 수녀원을 위해서 다시 성화를 그려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크라쿠프서는 하느님 자비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신심이 이미 활발하게 전파되고 있었습니다.
1943년 10월 6일에 두 번째 성화가 완성되어 크라쿠프로 운반되었습니다.
한편 아돌프 히와(Adolf Hyla)는 크라쿠프 수녀원 원장에게 전쟁에서 살아남을 것을 기원하는 신심봉헌으로 수녀들의 경당에 모셔 둘 성화를 그리고 싶다고 자청했습니다. 이레나 크쥐자놉스카(Irena Krzyzanowska) 원장은 원로 수녀들과 예수회의 요셉 안드라쉬(Jozef Andraaz) 신부와 의논한 끝에 히와 화백에게 파우스티나 수녀가 설명하는 대로 그린다는 조건으로 성화의 제작을 허락했습니다. 히와 화백은 설명서(파우스티나 수져의 일기에서 발췌된 것)의 카지미에로프스키가 그린 성화의 복사본을 토대로 그림에 착수했습니다.
히와 화백의 성화는 1943년 가을에 완성되었고, 크라쿠프의 수녀원으로 운반 되어 왔습니다. 바톱스키의 성화도 같은 시기에 도착하였습니다. 결국 두 개의 성화 중 어떤 것을 수녀원 경당에 모실 것인지를 놓고 의견이 갈라졌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우연히 그곳을 방문한 사피에하(Sapieha) 추기경이었습니다. 추기경은 두 개의 성화를 검토한 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히와 화백은 신심 봉헌으로 그림을 그렸으니 그가 그린 성화를 수녀들의 경당에 모셔야 합니다." 사피에하 추기경은 성화를 축성하고 경당에 걸어두라고 명령했습니다. 오늘날까지 이 초상화는 크라쿠프의 브로니아 3/9번지(ul. Wronia 3/9)에 있는 자비의 수녀회의 경당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이 경당의 출입문으로 들어가면 왼쪽 제단 옆에 성화가 보관되어 있습니다. 파우스티나 수녀의 지도를 받아 그려진 것으로 더욱 유명한 이 성화는 그래서 신자들로부터 특별히 공경 받고 있습니다.
폴란드 전역에서 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사람들이 와서, 자비로우신 그리스도 성화 앞에서 자기들에게 필요한 은총을 청합니다. 많은 신심행사가 봉헌되고 있으며, 이 성화의 사본은 온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습니다.
바톱스키가 그린 성화는 크라무프의 스몰레인스크(ul. Smolensk)에 있는 '하느님 자비의 성당'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이 후 오랫동안 여러 화가들이 그려진 그림들이나 파우스티나 수녀의 일기를 참고로 하느님 자비의 성화를 그렸습니다.
그 다음으로 눈이 간 곳은
제대 중앙으로 양쪽 벽면에
조각벽화가 있는데
찰칵!!
바로 이 분이 리투아니아 수호성인인
자비의 성모님입니다
[빌뉴스 하느님 자비의 성당 내부에 있는 자비의 성모님 조각화]
이렇게 적혀있네요
-상단-
"자비의 어머니"
-하단-
"우리는 당신 보호아래 피난처를
찾습니다"
이사장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리투아니아 빌뉴스 하느님 자비의 성당 내부(25.06.16)]
"바로 이 성화가
자비의 예수님 원본입니다.
리투아니아에 와 봤지만,
저도 이 곳은 오늘 처음 방문합니다."
"잠시 기도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빌뉴스 하느님 자비의 성당 복음화발전소 순례단 방문(25.06.16)]
이 거룩한 곳에서
자비의 예수님 원본 앞에서,
복음화발전소가 하느님의 뜻대로
발전해 나아가기를,
영적 육적 고통 중에 있는
회원들이 깨끗이 치유되기를,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세계 평화를 위해,
연옥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각자가 지향하는 기도가
주님 뜻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예수님의 자비를 청하며 기도드립니다.
예수님,
저는 당신께 의탁하나이다!
[리투아니아 빌뉴스 하느님 자비의 성당에서 복음화발전소 순례단 기도(25.06.16)]
원본 이미지를 처음 본 성녀는
실망감에 울면서 예수님께 불평했다.
"누가 당신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그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색깔의 아름다움이나
붓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나의 은혜에,
이 이미지의 위대함이 있다."
-파우스티나 성녀의 일지 내용 중-
이상으로 [성모발현지를 찾아서]
4편(리투아니아 빌뉴스 '하느님 자비의 성당')을 마칩니다.
★다음 5편(빌뉴스 '새벽의 문')을
기대해주세요.
♡숨은 이야기와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복음화발전소 카페에서 확인하세요
☞https://cafe.naver.com/epskr/3566
[유튜브 치우치유TV "하느님 자비의 성당"]
☞https://youtu.be/uqpGFxETRwg?si=KByTVoZA4guS0WpC
▶우리 복음화발전소는 정치우 안드레아 이사장이 선두에서 말씀을 선포하시고, 그를 따르는 봉사자들이 묵상 말씀으로, 유튜브로, 블로그로, 카페로, 다시 그 말씀을 재선포하고 있습니다. 발전소의 회원들 또한 그 말씀을 전달함으로써 직접적인 복음선포는 물론, 양보하고 내어주는 삶의 실천으로 우리가 추구하는 '삶'을 통한 복음선포에 앞장서고 있는 공동체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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