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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의 순례]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의 시복 시성을 위한 염원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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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복음화발전소관리자
    댓글 댓글 1건   조회Hit 286회   작성일Date 23-11-05 18:5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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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한 목자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1821~1861)


    최양업 신부의 시복 시성을 위한

    "희망의 순례"


     복음화 발전소는 한국 가톨릭 신자들의 염원을 담아 최양업 신부의 시복 시성과 시성을 기원하며 희망의 순례를 시작합니다. 이 순례의 여정은 최양업 신부의 탄생지를 시작으로 부모님의 성지와 신부님의 사목 여정지, 마지막으로 선종지와 묘소 총 30곳을 따라갑니다.


    정치우 안드레아는 복음화 학교의 설립자로서 한국에서 가톨릭 신자들이 신앙인 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40여 년을 교육사업에 헌신해왔으며, 2021년 8월 은퇴한 후 교육이 삶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교육과 훈련의 장인 복음화 발전소를 설립, 복음화 사업에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최양업 신부님은 한국 최초의 신학생으로서 증조부 때부터 이어져온 신앙을 바탕으로 한국 최초의 신학생으로서 김대건, 최방제와 함께 조선의 사제의 역사를 시작하였습니다. 

    1821년 '다락골 새터'에서 출생하였고, 1836년 프랑스 모방 신부의 천거로 김대건, 최방제 등과 함께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1837년 마카오로 건너가 신학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1849년 4월 사제 서품을 받고 1849년 12월 한국의 두 번째 사제로 고국땅을 밟았습니다. 그로부터 그는 박해를 피해 산속에 숨어살던 가난한 신자들을 찾아다니며 목회 활동을 했습니다. 말씀과 미사를 갈망하는 신자들을 위해 한 해 7천리 길을 걸었습니다. 이 고행의 여정은 1861년 6월 15일 과로로 문경에서 사망할 때까지 11년 6개월 동안 지속됐으며, 시신은 '제천 베론'에 안장되었습니다.


    최양업 신부의 죽음은 순교가 아니었기 때문에 정식으로 시복 시성이 되지 못했고, 2014년 4월 26일에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서 가경자가 되었습니다. 박해시대에 사제로서 죽음을 무릅쓰고 긴 시간동안 충실하게 사목 활동을 펼치신 길위의 목자, 땀의 순교자이신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의 숭고한 정신을 본받고 또한 말없이 주님을 위해 목숨을 내던진 이름없는 순교자들의 믿음을 이어받아 이제는 삶으로 복음을 선포하는 이 시대의 사도행전을 써 내려가기 위해 이 여정을 시작합니다.


     "또 하나의 소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삶 안에서 죽고 묻히는 것입니다."

    ​ 

      -최양업 신부의 서신 내용 중.-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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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란님의 댓글

    프란 작성일 Date

    최양업신부님의 시복시성을 위한 염원의 일환으로 2023년 한해동안 복음화발전소 공동체 성지순례를 했던일이 엇그제같은데, 다시 홈페이지에 새로운 방법으로 소개하시니, 신선합니다. 유투브에도 소개되어 젊은 크리스챤이 많이 보시었으면 합니다. 또한 2027년 세계카톨릭청년대회가 한국서 열리니 그전후하여 이자료가 귀중하게 사용되기를 바라며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