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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장님의 기고글] 하느님의 자비와 정의 -월간 꿈C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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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부매니저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306회   작성일Date 24-01-08 17:39

    본문

    ​ 하느님의 자비와 정의 


     ​ 하느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우리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분이십니다. 세상을 지금 이 모습으로 있게 하시고, 우리를 그 세상 안으로 보내시고, 세상을 주관하시고 이끌어 가시는 그야말로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우리가 그런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의 자녀라는 사실입니다. 만약 우리들의 부모님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인 정치인이라면 어떠하겠습니까? 얼마나 큰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겠습니까? 그런데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하느님이 우리를 자녀로 초대하십니다. 상상만 해도 가슴 벅찬 일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그 자체 만으로도 하느님께 감사해야 됩니다. 참으로 깊이 감사해야 됩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고 있을까요?

     부모님이 양반이어서 내가 양반으로 태어났다면 양반답게 살아야 합니다.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면 귀족답게 살아야 합니다. 왕족으로 태어났다면 왕족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세상에 누구보다도 귀한 하느님의 자녀로 왔습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선택하고 뽑아 주셨습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그런데도 우리가 잘 살지 못하니까 직접 오셔서 우리를 위해 희생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수난과 고난이 도대체 나와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지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얼마나 큰 영광을 입은 존재인지 알 수 있습니다.


     과거 예루살렘에 순례를 갔을 때, 가장 먼저 올리브 산에 올랐습니다. 예수님께서 피땀 흘리시면서 기도하신 그 장소, 그 바위에서 기도했습니다.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수난을 앞둔 예수님의 고통이 마음으로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생각할 때 그분의 신성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성에 대해서는 그리 많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분도 참 인간이셨다는 점입니다. 아무 죄 없이 죽음을 맞아야 하는 고통이 얼마나 크셨겠습니까? 예수님의 고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잠시도 깨어 있지 못하고 잠을 잡니다. 그 모습을 보신 예수님은 어떠셨을까요? 처절한 기도를 마치시고 그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다신 산을 내려왔는데 제자들은 그때까지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란 말이냐?"(마태 26,40)

     이처럼 예수님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치셨습니다. 그렇게 불편한 관계에 있었던, 아니 소통이 끊어졌던 인간과 다시 관계를 맺으셨습니다. 그래서 통교가 가능하게 됐습니다. 이것 자체가 얼마나 큰 하느님의 자비입니까?

     이 자비가 아니라면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세례를 받았다는 그 자체만으로는 구원의 길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끊임없이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그 관계 안에서 우리의 모습을 회복해 가야 합니다. 은혜 받기만 원한다면 십자가의 길을 걸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가는 것은 결국,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우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려면, 이 세상에서 주어진 모든 고난과 고통을 수용하고 포용해야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은혜만 받은 것이 하느님 자비의 신비가 아닙니다. 하느님 자비를 받기 위해선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하느님께 향하는 마음을 다시 정리해서(회개해서)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때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할 수 있고, 또 하느님의 자비를 세상에 전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얻기 위해 첫 번째로 해야 되는 것이 회개입니다. 무사안일주의, 타성에 젖은 삶, 안주하는 삶을 회개해야 합니다. 매 순간마다 우리에게 끊임없는 양식을 부어 주시고 말씀을 통해서 또 성체를 통해서 우리에게 영양분을 주시고 우리를 가꾸어 주시고 때로는 가지치기도 해 주시고 좋은 흙을 우리에게 뿌려 주시기도 합니다. 은총의 선물을 주시기도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그분의 돌보심을 받고 그분의 가꾸심 속에서 살아왔습니까? 그럼에도 우리가 열매를 못 맺고 있다면 그야말로 근본적인 회개가 필요합니다. 

     하느님이 자비로우신 것처럼 우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비로운 사람이 되려면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통해서 삶을 완전히 바꾸어야 합니다.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묵은 것들을 버려야 합니다. 그렇게 회개를 통해 새로운 사람이 되고, 열매를 맺는다면 그 열매는 저절로 나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자비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자비는 구체적으로 나눔을 통해 드러납니다. 여기서 나눔이란 쪼개는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쪼개는 것이지, 내가 여유가 있어서 나눠주는 것이 아닙니다. 나눔은 하나밖에 없는 빵을 쪼개어 주는 것입니다. 빵 두 개를 가지고 있어서 하나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 시대에 하느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올바로 알아듣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내가 먼저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하고, 그 체험을 이웃과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많은 면에서 부족하고 지혜도 없고 가진 것도 없지만, 실천하겠다고 용기 있게 다짐한다면 하느님이 도와주실 것입니다. 하느님이 직접 그 길과 방법 또한 알려 주실 것입니다.


     만약 가는 길이 지치고 힘들어도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이미 우리는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를 체험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은 지치고 힘든 우리를 그냥 못 본 척 내버려둘 분이 아닙니다.


     -가톨릭 신앙 월간지. 월간 CUM-

     (23년 5월 호에 실린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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