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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장님의 기고글] 기도의 힘, 기도의 열매(04) -월간 꿈C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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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부매니저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246회   작성일Date 23-11-20 20:05

    본문

    기도의 힘, 기도의 열매(04)

    (위대한 기적)


    회개는 행동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신앙인이 된 이후 무엇을 바꾸었습니까? 신앙인이라면 최소한 세 가지는 바꿔야 합니다.

    첫째, 말을 바꿔야 합니다. 좋은 말만 해야 합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뒷담화 하고, 비판하고, 단죄하고, 화내는 모습 하나하나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둘째, 행동을 바꿔야 합니다. 어떤 행동을 바꿔야 할까요? 하느님이 보실 때 기뻐할 수 없는 그런 습관들을 각자 하나씩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나태' 입니다. 게으르니까 기도를 하지 못합니다. 기도는 바빠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게으르기 때문에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악습을 바꿔야 합니다.

    셋째, 가치관을 바꿔야 합니다.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는 삶의 가치관이 중요합니다. 돈 많이 버는 것에 가치관을 두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건강이 가장 중요한 가치관인 사람도 있고, 오직 자녀를 잘 키우는 것이 가치관인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이 삶의 최종 목표인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아직도 참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신앙인들의 최종 삶의 목표는 그리스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삶의 가치관이 바뀌면 성령님으로부터 삶의 에너지를 얻습니다. 성령께 의탁하고, 성령으로부터 힘을 얻고, 성령이 이끌어 가시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면 삶 자체가 바뀝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회개에 앞서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기도생활입니다. 기도 없이 회개는 불가능합니다. 나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주님께 말씀드리려면 먼저 나 자신을 바로 보아야 합니다. 나를 제대로 알아야 주님께 내 모습을 고백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내가 참으로 부족하고 나약하다는 것을 고백해야 절대자이신 그분께 온전히 의탁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회개가 가능해집니다.


    50여 년 후에는 이 글을 쓰는 저나, 이 글을 읽는 분들 대부분은 이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존재는 없을 것입니다.

    지금은 살아 있으니까 누구의 엄마이고, 아버지이고, 할아버지이고, 할머니입니다. 회사에서는 사장이고, 성당에서는 회장입니다. 하지만 50년 후에는 그런 것들을 기억해 줄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1000년 후에 과연 나에 대해 기억할 사람이 있을까요?

    하지만 오직 예수님은 영원히 나를 기억해 주시고, 변호해 주시고, 함께해 주십니다. '영원한 내편'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 매달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끊임없이 다가오십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시간을 내어 주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들 삶 안에서 끊임없이 많은 은총을 베풀어 주시고 도와주시는데 정작 감사는 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와 달라고만 합니다.

    왜 감사하지 못할까요? 감사할 일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은총을 받은 일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도 잘 안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주님과 평소 좋은 관계를 맺는 유일한 시간입니다. 아무리 바쁘고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있어도 주님과의 관계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기도가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익숙해져서 자연스러운 생활의 일부분이 되어야 합니다.


    밥을 먹지 않고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한 끼에 많은 밥을 먹었다고 해서, 이후 1개월을 굶지 않습니다. 영적인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받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불가능합니다. 어쩌다 강렬한 영적 에너지를 한 번 받았다고 해서 그 한 번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밥을 매일 먹듯이, 영적 에너지도 매일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만약 5~6개월 동안 영적 에너지를 받지 않은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사망선고를 받은 사람입니다. 육신이 멀쩡하니까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살아간다면 하느님을 믿을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추구하는 것, 우리가 믿고 따르는 것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입니다. 우리가 믿는다고 말하는 그 믿음도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믿음의 결과는 반드시 우리들 삶 안에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모습으로? '행복'이라는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이 이 세상 안에서 더욱더 풍성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요한 10,10)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이 넘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이 바로 기도시간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것을 받지 않으면 삶은 무너집니다. 영적으로 죽어갑니다. 영적으로 살아가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받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께선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고 말씀하셨습니다. 길, 진리, 생명이신 그분을 쫓아가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 세상 안에서 잘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확신을 가지고 주님께 자신을 맡겨야 합니다. 봉헌하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를 지금 이 자리에 있게 하시는 분은 하느님입니다. 나를 창조하신 분, 나를 지금까지 이끄신 분도 하느님입니다. 내가 잘나서 지금 먹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우리는 축복된 존재입니다. 그 축복이 세상 안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세례는 영어로 뱁타이즈(baptize)인데, 그 어원이 희랍어 '밥토'(bapto)입니다. 이 말은 원래 '담그다, 잠기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온전히 잠긴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됐다는 것은 '성령 안에 푹 잠겨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성령 안에서의 삶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바로 기도생활입니다. 기도가 아니라 기도생활입니다. 기도가 생활로 이어져 열매가 맺어져야 합니다. 신앙은 지식이 아닙니다. 신앙은 삶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 열매를 모든 사람과 나누는 것입니다.


    -가톨릭 신앙 월간지. 월간 CUM-
     (23년 1월 호에 실린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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